
하영이는 IMF 가 가져다 준 하나님의 선물
신
주 련 집사
(1998 년 5월 홀트아동복지회 충청아동상담소를 통해
2 개월 여아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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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의
대한 첫생각
우리도 IMF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지만 어려울 때 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
부부는 마음의 결정을 하고 홀트아동복지회
충청아동상담소에 전화 문의를 하고 부부가 함께 방문할
날을 약속했다. 사무실을 방문한 후 그냥
여자 아기면 된다는 것만 말씀드렸고 이후에는 홀트에서
하라는 대로 서류를 준비했으며, 상담을 계속했다.
하영이란
이름은…
그리고 출산을
앞둔 엄마처럼 아기가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준비하기도
하고, 많은 이름을 적어가며 딸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한 끝에 全(온전
전) 廈(큰집
하) 榮(영화로울
영)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뜻으로 지어놓고 우리 딸을 만날 벅찬 기쁨을 누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약한
자들이오니 꼭 건강한 아이를 주세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우겠습니다.' 라는
기도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시댁과 친정에
입양을 하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너희들도
힘든데 잘 생각해서 하라'는 말씀만 하셨다.
하영이와
첫 만남
귀염받는
하영이의 새출발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난 뒤, 하영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우리와 눈을 맞추고 옹알이도 하고, 모빌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좋아했다. 오빠인
현찬이는 하영이가 자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려 그것을
한참동안 쳐다보며 노는 것을 보고 '펩시
맨'한다며 웃음을 참지 못해 마시던 콜라를
코로, 입으로 뿜어내기도 했다. 이제
하영이는 오빠의 자랑이 되었다. 담임선생님께도,
교생선생님께도, 현찬이는
하영이의 예쁜 사진만을 골라 갖다준다. 자신에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운가 보다. 하영이가
꼭 3개월이 되던 날, 처음으로
혼자서 몸을 엎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남편에게
전화하고 친한 모든 이에게 전화했다. 꼭
철없는 새댁이 첫애 키우며 하는 것 처럼….
하영이가 백일쯤
되었을 때는 딸랑이를 제법 잘 쥐고 놀았고, 가끔
'까르르'소리를 내어 웃기도
했다. 더운 여름날에 땀띠 한번 안나고 잘
넘어갔다. 처음 보행기를 탔을 때는 자꾸
뒤로만 가더니 옆으로 가고, 며칠 후에는
마음대로 방향전환을 했다. 3개월 17일째
되던 날에는 자고 일어나더니 엉덩이를 치켜들고 앞으로
밀면서 조금 기기 시작했다. 6개월 12일째
되던 날에는 소파를 붙잡고 간혹 섰으며, 8개월
되었을 때는 붙잡고 서서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다녔고,
보행기를 밀고 다니기도 했으며, '엄마'를
의미있게 부르고, '아빠','오빠'는
의미없이 그냥 놀면서 계속 말했다. 그즈음
하영이의 '짝짜꿍' '잼잼'
'곤지곤지' 때문에 가는 곳마다
함박웃음이 있었고, 아빠의 퇴근시간이면
하영이는 무릎으로 바쁘게 기어가며 기쁨의 고함을 질렀다.
하영이의 이런 모습 때문에 아빠는 지금도 문을
열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10개월을 3일
앞두고 세발자욱을 걸었으며, 18개월
때부터는 대소변도 가렸고, 지금 21개월이
지난 하영이는 간단한 말들을 하며, 가족들과는
뭘 말하는지, 뭘 원하는지 의사소통이 거의
다 된다.
하영이는
여간해서 잘 울지 않는다. 잘 웃고, 낯도
가리지 않고 붙임성이 많아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갓난아기 때부터 밤
10시경에 잠들면 밤새 곤히 자고 아침 7시경에
일어난다. 하영이의 머리카락이 조금 길어져서
적은 머리카락으로 겨우 분수머리로 묶을 수 있었을 때의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이웃에
사는 아들만 둘 키우는 집사님댁에 하영이를 데려가 머리를
묶었다며 딸을 키우는 즐거움을 얼마나 자랑했는지 모른다.
하영이의 날마다 커가는 모습에 세월을 잊어버린다.
하영이를 안으면 세상의 모든 행복이 내 품안에
다 와 있는 것 같다.
주위의
반응
입양후 모두가
기독교인인 친정에서는 환영하며 축하해주셨으나, 시어머님께서는
부산에서 먼길을 오셔서는 덩치큰 아들 현찬이는 세 번씩
안아주시면서 어린 하영이에게는 눈길 한번 주시지 않았다.
부산으로 돌아가신 어머님도 우리도 너무 마음이
아팠으나, 20일 가량이 지난 후 다시 오셔서는
"얘야!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들이 참 장한 일을 했구나. 착하다."하시며
하영이의 교육보험증서를 내놓으시고는 힘닿는 데까지 넣어주마고
하셨다.
교인들 의 반응을
보면서 입양을 통해 우리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놀랐다. 대부분
한번씩은 입양에 대한 생각을 했으나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한다'며
교인들은 한결같이 하영이에게 사랑을 전했다.
불신자 이웃 의
반응은 입양에 대해 거의 부정적인 시각이었으며, '커서
잘못되면 어쩌나'하고 나보다 더 많이 걱정을
했다. 대부분 유교적인 생각에서 내 핏줄이
아닌 남의 자식을 어찌 내 자식으로 키우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입양에
대한 나의 생각
입양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태'를
통해 우리 가정에 주시기로 예비하셨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방법만 다르지 똑같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하영이에게도 입양사실을 알려주며 키우기를
원한다. 이 문제에 대해 나 스스로도
자신이 없다. 하지만 똑같은 환경으로 태어나
자신과 같이 입양되어 살고 있는 다른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하영이에게 또 다른 큰 힘이 되듯이, 입양된
다른 아이들에게 하영이가 힘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국내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어린 생명들을 위해 입양을
공개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날이 갈수록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하영아! 우리가
너로 인하여 고생하고 수고하는 것이 아니란다. 너
때문에 아빠와 엄마, 그리고 오빠가 삶의
기쁨,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단다. 너도
우리들로 인하여 행복한 삶이 되길 기도한다. 너의
이름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바르게 자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영이가
되렴."
2000년 1월
17일 하영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영엄마 신 주
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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