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로 태어난 재원이

: Min Huh (Ramsey, New Jersey)
(2003 2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입양)


재원이 돌잔치 가족 사진

911 에서 받은 씨앗

2001 9 11일 날씨 좋은 가을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나는 헬스 클럽으로 갔다. 로비 천정에 있는 TV 에서는 연기나는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을 보여주며 비행기가 사고로 부딛쳤다고 했다. 별 생각 없이 아래층 요가 클라스로 내려갔다. 한 시간쯤 운동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로비로 올라오니 사람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TV에서는 불타오르는 빌딩을 보여주며 다급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테러사건인것 같다고 했다. 증권가 사람들은 뿌연가루를 뒤집어쓰고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그들 뒤에서는 폭발하는 소리, 비명소리, 공포의 소리가 들렸다. 세상이 끝날때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든것이 마비되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며 꼭 악몽을 꾸는 느낌이었다.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뽐내던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사건이었다. 세속적으로 살고 있는 미국을 기도모임으로, 교회로 모이게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쇼크와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그 많은 생명들이 그런식으로 죽임을 당할수 있을까? 그 화창한 가을날에 그 멋진 직장에 출근하면서 오늘 내가 죽을것이다 누가 생각 했을까? 회의하다, 전화받다, 모닝커피 마시다 얼떨결에 죽었을 것이다.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한 일인가! 나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 슬펐다. 예레미아서를 읽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경고를 주었는데도 죄의 모습에서 떠나지 못하고 악한것만을 쫒아 가다가 멸망하는 이스라엘민족나는 더 이상 지금처럼 살수 없었다. 나와 내 가족의 편하고 윤택한 생활만을 위하여 모든 것이 나중이 되는 이기적인 생각을 벗어 버리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좋은직장에서 좋은환경에서 살면서 은근히 교만하게 지내다 몇 년 전 어려운 일을 겪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나름대로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옛날보다 더 풍요롭게 살게되었고 마음과 영혼의 기쁨과 만족도 더 컸다. 우리는 남 돕는 여러가지 일에 후원도 하며 착하고 겸손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9/11 사건 이후, 내 손해 안 날만큼만 떼어주는 것은 간사스러운 짓이라고 여겨졌다. 언제 끝날지모르는 인생인데 조금 더 큰집으로, 좋은 옷으로, 좋은것들로 내 인생을 꽉꽉 채우려는 내 모습이 미련하게 보였다

엠펙과 입양 결정
너희들은 더 베풀고 살아야해. 내가 너희에게 준 모든 것은 네게 맡겨둔 것이지 네 것이 아니야’’ 하나님이 말씀하는것 같았다. 나는 남편과 상의해서 우리가 금전적으로만 아니라 아이들과 같이 봉사도 할 수 있는 것을 알아보기로 했다. 리서치를 하던중 입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입양해서 아이를 키우는 훌륭한 사람들도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서치를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입양이라는 것으로 포인트 되고 있었다. 영화를 봐도 TV를 틀어도 책을 읽어도 신문을 읽어도, 하다못해 설교를 들어도 모든것이 입양에 대해 나에게 말하는듯 들렸다. 내가 왜 이럴까 우습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엠펙(Mission to Promote Adoption in Korea 준말: MPAK)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공개 입양을 하는 가정이 있다는것이 너무 놀랍고 신기했다. 스티브 모리슨 씨와 한연희 회장님의 비젼과 실천에 감명 받아 도전이 되었다. 번쩍하는 생각이 났다. 나도 입양하면 되겠다!

아이가 하나 더 있었으면하면서도 한편으론 남편도 나도 이제는 편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기도하면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입양이란것은 내가 살면서 생각해낸 가장 지혜로운 아이디어라고 여겨졌다. 남편에게우리 셋째는 입양할까?”했더니 놀랍게도 그럴까?”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남편의 긍정적인 반응에 더 불이 붙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더 구체적으로 열심히 입양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입양은 가족이 되는 하나의 다른 방법이며, 가정없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곳을 만들어 주는 최고의 길이었다. 모든 아이들은 가정에서 보호받고 사랑 받을 권리가 있다. , 나로써는, 임신이 아닌 방법으로 아들을 얻을수 있고, 가정이 필요한 아이에게 엄마가 되어줄 수 있었다. 한 아이에게 권리를 찾아주고 보호해주며 사랑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과연 나랑 전혀 상관도 없는 아이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하루에 열두번도 더 마음이 바뀌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준 두 딸들을 키우기도 때론 힘이든데, 또 다른 애를 더군다나 내 속으로 낳은 애도 아닌 아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만일 입양을 해서 잘 키우지 못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서라도 확답을 듣고 싶어서 아침 저녁으로 결정했냐고 독촉을 했다. 어쩌면 나는 남편이 강력하게 반대 해주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혹시 내가 반대에 부딛치면 포기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던 중, 2002 5월에 가게된 수양회에서 내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닳게 되었다. 내게 보여주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며 그 것이 나를 통해 전달되고 나눠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도었다. 내가 가진 풍성한 은혜의 기쁨을 나누어줄 상대는 바로 내가 입양할 그아이!

우리가 언제 완전히 준비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할수있을까-우리는 내 모습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채우시고 준비하시고 도와주신다.” 바로 그거야! 나는 입양하면 돼. 그러면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도와 주실거야. 드디어 마음에 결정을 하고 너무나 기뻤다. 집에 돌아가면 남편을 결정하게 만들고 말리라.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남편이 먼저 아이를 입양하자고 했다. 이럴수가! 너무 놀라웠다. 남편은 전날 밤 혼자 기도하는 중에 포대기에 싸여진 예쁜아이를 봤는데 그 아이가 너무나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우리가 입양하는게 하나님의 뜻인것 같다고 했다. 논리적인 나에게는 말씀으로, 느낌이 중요한 남편에게는 환상으로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섬세함에 감사드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 길로 이미 받아두었던 홀트 입양신청서를 써서 보냈다.

원이 선택 과정
'원하는 조건사항' 이라는 란에 "한살미만 의 건강한 남자아기"라고 체크 했다. 남편이 반대할까봐 몰래 '기타'란에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나 장애는 고려할수있음"이라고 써넣었다. 미국 홀트 싸이트의 Waiting Child 프로그램 페이지에는 주로 장애아나, 연장아, 또는 쌍둥이 같이 입양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진 아이들이 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다. 그 아이들은 입양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은데 나도 왠지 건강한 아이만 원하는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나는 우리에게 오게 될 아기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두번 임신했었지만 한번도 뱃속의 아기를 위해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이 없다. 모든것이 내 능력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같이 홀트 싸이트에 들어가 사진을 보며 그 아기들을 위해 기도했다.

마지막 가정 방문이 있던 날, 나는 우연히 Waiting Child 페이지에서 어떤 아기의 사진과 소개글을 보았다. 2주정도 미숙아로 태어났고 생모가 어떤 증상이 임신전에 있었을 뿐,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이 Waiting Child가 된 것 같이 보였다. 물어보지 않으면 후회 될 것 같아서 문을 나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그 아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홀트 오레건 본사 사무실의 책임자를 통해 그 날 저녁 우리는 그 아기에 대한 정보와 생부모에 대한 서류를 팩스로 받았다. 그 아기는 내가 예상했던대로 아무 이상이 없는 건강한 아기였다. 아기인데도 벌써 사내답게 생긴게 씩씩하게 보였다. 이미지가 우리 남편이랑 비슷하게 보였다. 그 친부모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상상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 슬프고 또 불행해 보였다. 그 스토리를 읽고 또 읽으며 우리는 눈물 흘렸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이 아이를 거절할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한채 우리는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얼떨결에 막대한 결정을 해도 되는 것인가? 떨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국에 계신
한연희 회장님에게 전화를 해 한번도 만난적도 없는 그 분에게 울먹이며 횡설수설 이야기를 하니 회장님이 "떨리시는군요" 하셨다. 그랬다. 너무 떨렸다. 누군가가 "괞찮아, 결정해도 돼"라고 말해주기를 바랬다. 밤새 뜬 눈으로 세우고 새벽에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남편이 "우리 이 아기 입양하자"고 했다. 그 날아침 소아과 병원 열자마자 아기의 건강 진단서를 들고 찾아가 생모가 임신전 가지고 있었던 질병이 우리 아기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혹시 포기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가 아닌 준비 하기 위한 확인이었다. 혹시 어떤 영향이 있더라도 이미 우리아들이니까.

홀트에서는 Waiting Child를 입양할 수 있는지를 심사해서 결정하는 기관이 한달에 두번 모인다고 했다. 우리는 마음 조이며 기다렸다.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와서 만장일치로 우리에게 입양을 허락했다며, 마지막 질문이 있다고 했다. "당신들은 아이에게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계획인가요? 주위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라 말할건가요? 한국인들은 입양에 대해 비밀스럽게 여긴다던데요조금 당황이 되었다. 한국인들에 관해서까지 물어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 우리는 어릴때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입양사실을 이야기해줄겁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이어진 가족이라고. 그리고, 맞습니다. 한국인들은 굉장히 프라이빗한 민족이기 때문에 입양뿐 아니라, 이혼, 장애, 이런것들은 다 속으로 간직하고 삽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은 한국 가정들이 공개 입양을 하고 또 입양을 알리는 일을 하는 단체가 열심히 일하고 있지요. 엠펙이라구." 내 답변에 만족해하며 전화를 끊었다. 만약 엠펙이 없었더라면 근거없는 내 추측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고의 발렌타인 데이 선물
그 후
4개월동안 계속되는 서류준비, 훈련,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우리 아기 오는 날,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기다리면서 해결하지 못했던 나의 내면의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었다. 기다림 속에서 나를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느껴졌다.

214일 생애 최고의 발렌타인 데이 선물을 받았다-우리 아기 재원이의 여행이 허락됐다는 소식. 날아갈듯이 기뻤다. 아이들도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남편과 재원이가 오기까지 일주일 동안 두 딸들과 흥분속에서 아기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2 28일 금요일에 우리 아들 재원이를 안고 남편이 집으로 왔다. 잠들어 있는 아기. 사진보다 작아보였다. 참 예뻐보였다. 드디어 집으로 왔구나. 얼마나 기다렸는데잠에서 깨어나더니 두리번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안으니 품으로 쏘옥 들어와 울음을 그쳤다. 엄마를 알아보았나? 목사님이 축복해주시려 그 늦은밤에 오셨다. 아이들은 들떠서, 재원이는 낮설어서, 남편과 나는 감격해서, 우리들은 그 날 모두 잠을 못 이루었다.

우리의 입양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이렇게 긴 글을 쓰고 나니 내 모습을 너무 드러내 보인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추억을 이야기하는것을 좋아한다. 나도 재원이가 컸을때 한가지 감정도 빼어놓지 않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부끄럽지만 이렇게 길고 긴 글을 남겨둔다.


돐을 맞이한 미남인 재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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