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길/한연희 가족 이야기

(90년 4월 시흥시 소재 송암보육원에서 7세 남아 입양)
(98년 6월 대한사회복지회 서울 사무소에서 6개월 남아 입양)


유연길/한연희 가족 
웬쪽으로부터
: 유희곤, 한연희(엄마),
유명곤
, 유연길(아빠), 유하선

우리 부부는 결혼을 약속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가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일이 무엇인지 기도하다가 고아를 특별히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꺼이 함께 하겠다는 결단으로 결혼 후 아이 하나만 낳고 입양하기로 약속하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81년 7월 아들을 낳고 입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다렸지만 아이의 건강도 나쁘고 경제적 여건도 좋지 못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습니다.

87년 목사님 말씀 중 "성령을 소멸치 말며" 라는 구절에 심한 충격을 받아 고아는 본적도 없던 우리들이 가졌던 '입양하겠다' 는 생각이 주님이 주신 것이라면 어떤 일들을 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  터 하는 것이 좋겠다는 지혜를 주셔서 114에 전화를 걸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고아원에 다니게 되었고, 그곳에서 제일 어린(당시4살) 아이를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찾아가 함께 놀기도 하고 책도 읽어 주며 지내던 중 끈질긴 요청에 의해 89년 시부모님으로부터 어리고 예쁜 여자아이를 입양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너무 기뻐 입양기관을 찾아갔으나 반응은 의외로 부정적이었고 꼭 하고 싶다면 서류를 내고 몇 개월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서류를 준비하다가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아기가 필요해서 입양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가정이 필요한 아이를 키워보겠다고 계획을 했던 것인데 뭔가 우리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를 뿐 아니라 보육원에 있는 아이가 마음에 몹시 걸렸습니다. 나이도 있고 얼굴도 호감이 갈 만큼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허락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몇 개월을 만나고 오는 날이면 울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치 않으시는데 우리부부는 한없이 망설이고 있는 모습 속에서 죄인일 수밖에 없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드디어 90년 4월 8일 보육원 총무에게 의사를 물었더니 불가능하다며 시험적으로 데려가 보고 다음에 말하자는 제안에 어렵게만 느껴졌던 첫입양은 장난처럼 다가왔습니다.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기쁨에 눈물만 흘렀습니다. 완강한 아버님의 반대에 난감하기도 했지만 며칠만의 고민 끝에 허락해 주셔서 새롭게 결심하고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까지 피차간의 긴장으로 힘든 시기를 거치게 되었지만 3년여가 흐른 어느 날 서서히 존댓말이 반말로 변하고, 투덜거리며 부탁도 거절하는 등 신뢰를 바탕으로 한 당당한 둘째 아들로 자리를 잡았음을 느끼게 되었을 땐 우리모두에게 또 다른 기쁨이었습니다. 서로의 허물을 덮어줘야 하는 가족의 사랑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즐겁고 기쁜 이면에는 남을 의식하여 지나치게 잘 키워보겠다는 부모로서의 욕심이 커다란 걸림돌로 숙제처럼 남아있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한 후에야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한 은혜로 시작됨을 자각하고 아이자체의 소중함을 인식하여 어떻게 자라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하는 데에만 마음을 쓰기로 하자 우리 가족은 훨씬 자유스럽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행착오가 생략된 새로운 마음으로 입양하고 싶어졌고 시기를 언제로 잡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성경통독을 하며 다시금 하나님이 고아에 대해 특별한 사랑의 마음을 갖고 계심을 확인했으며, IMF로 많은 고아들이 생겨나고 가정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폭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부부가 함께 운영해 오던 고시원에 직원을 채용하고 두 번째 입양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실행에 들어갔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처음보다 더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주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투명한 경제여건과 현실적인 문제(40세가 넘은 부부의 나이와 입시생들) 때문이었지만 동의는 하면서도 굽힐 수 없을 만큼 절박했습니다. 결국 많은 염려를 동반한 허락을 받고 입양했는데 입양 과정 중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만 의지하기 위해 여아 남아를 선택하지 않고 기도만 했는데(속으로는 은근히 딸이기를 바랬지만) 6개월 된 남아로 정해졌고 셋째 아들은 며칠만에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 할만큼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18년 전의 양육경험은 너무나 희미해서 그저 새롭고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고3, 중3 형들을 제치고 아빠 엄마 아기와 셋이 나들이를 나가면 신혼부부인 듯 흥겨웠고 항상 웃을 일이 생겨 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자주 보러 오시고 엎어주시는 등 많이많이 사랑해 주십니다.

셋째 아들에게 자연스런 입양사실을 알리기 위해 우린 사진이 들어있는 육아일기를 쓰고 있으며 아들이 커서 필요할 것 같은 모든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호적도 친자가 아닌 양자로 올렸으며 장차 아이가 원한다면 친부모를 찾는 일에도 협력할 것입니다.  몇 개월 동안 밤잠을 설치며 아기를 돌보느라 지쳐서 큰아들들한테 소홀했는데 균형 있는 생활을 위해 낮 동안엔 어린이집에도 다니고 있습니다.

입양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를 드리고 입양을 허락해 주신 부모님과 나이에 비해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 첫째아들과 우리 부부를 부모로 받아들여준 둘째아들과 기쁨 덩어리 셋째 아들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기도와 여러 가지로 사랑을 누리도록 협력하신 믿음의 식구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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