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둥이 딸아이가 빚어내는
삶의 활기
(한봉수
선생가족 이야기)
편집:
이현주 (홀트아동복지회 홍보과장)
(1997년
5월 홀트부산아동상담소를 통해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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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치는 한봉수선생님은 최근들어 점점 동료들과 즐기던
술자리 횟수도 줄어들고 귀가시간도 빨라졌다. 바로 늦게 본
딸 소영이의 재롱 때문이다. 소영이는 한봉수선생님 부부가
각각 마흔한살, 서른여덟살에 얻은 귀한 딸이다.
1983년 결혼후 부인이
난소종양 제거수술을 받고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은 아이없이 두사람만의 가정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부인은 자녀를 원했다. 부인이 입양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남편은 그냥 우리끼리 잘 살자며 입양을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인이 지속적으로 남편을 설득하여 1997년 5월
홀트부산아동상담소를 찾게 된 것이다.
1년여의 상담과
준비기간을 거쳐 1998년 6월, 생후 보름이 지난 딸 소영이를
만나면서 부부의 생활은 크게 변했다. 두사람만의 조용한
공간은 아이가 뿜어내는 활기로 가득했고 나날이 새로운 몸짓이
늘어가는 딸아이는 부부의 시선을 꼼짝없이 묶어버렸다.
소영이는 작은 병치레도
하는 법 없이 잘 먹고 잘 놀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특히
아빠를 좋아하는 소영이는 아빠가 집에 계신 시간에는 아빠
곁을 떠나지 않고 졸졸 따라다닌다. 덕분에 집에서는 담배도
피우지 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효녀인가.
입양후 1년여 외가
가까운 곳에 살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탓에 지금은 외가와는 한시간도 넘게 걸리는
아빠의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도 하루가
멀다하고 외가나들이를 한다. 그곳에는 소영이와 잘 놀아주는
사촌 언니, 오빠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틀만 만나지
못해도 소영이 데리고 오라고 성화이신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이다.
한봉수선생님은
이제 동료교사나 주변사람들이 아이문제로 걱정하거나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면 적극적으로 입양을 권유한다. 가끔
소영이를 학교에 데려가기도 하고, 소영이 돌잔치때는
손님들에게 아예 입양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본인도 망설였던
입양이 그 이후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았는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굳이 장래를 대비해서 뭔가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소영이가 성장할 때까지 잘 길러야
할 책임이 생겼고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건강도 유지하고
저축도 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활에 훨씬 활력이
생겼다고 할까, 의욕이 생겼다고 할까, 이전과는 달라진 충만한 생활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속상한 일도 있었다.
이웃들의 수군거림과
유쾌하지 않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면
좋으련만 양가의 가족들이나
친지들과는 달리
이웃들은 지나친 관심을 보이거나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굳이 이사를 한
이유도
한선생님의 학교가 너무 멀기도 했지만 모르는
이웃이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소영이가
입양에 대해 물어온다면
숨김없이 말해줄 작정이다.
그리고 그
이전이라도 자연스럽게 알려주려고 한다. 다만
그때 소영이가
너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소영이에 대한 엄마, 아빠의 유일한 근심거리라면 소영이가 먹는 걸 좋아해서 너무(?) 튼튼해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덜 늘씬하더라도 건강하기만 하다면 바랄 것이 없다며 부부는 웃는다. 평범한 일상이 빚어내는 소리없는 행복, 한 생명이 안겨다 준 선물이요 축복인 것이다.
